강제된 경영 방침의 전환
콤팩트 쿠페 '비터보'는 오일 쇼크로 침체된 마세라티를 부활시켰습니다. 그러나 부품 품질 문제, 잦은 노동 쟁의 등 유럽 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환경은 결코 안정적이지 않았습니다. 북미 시장의 안전 기준 강화와 빈번한 리콜로 인해 많은 유럽 제조사들이 시장에서 철수했던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마세라티 역시 예외는 아니었으며, 1987년을 전후로 북미 시장에서 철수하고 틈새시장을 노리는 고성능 소량 생산 스포츠카 제조사로 돌아섰습니다.
1990년에는 마르첼로 간디니의 펜 끝에서 탄생한 날렵한 스타일의 콘셉트 모델 'Chubasco'가 공개되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형제 회사인 데 토마소가 'Mangusta' 등에 적용했던 센터 백본 섀시를 기반으로 'Shamal'용 3.2L V8 트윈 터보 엔진을 세로로 미드십에 장착해 430마력을 발휘한다고 발표되었습니다. 'Bora'와 'Merak' 이후 오랜만에 등장한 본격적인 미드십 슈퍼 스포츠카였습니다. 추바스코(Chubasco)는 당시 큰 인기를 누리던 페라리 F40를 겨냥한 모델로, 가격대도 비슷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 콘셉트 모델은 생산되지 않았지만, 그 전해에 발표된 샤말(Shamal)과 더불어 마세라티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모델이었음은 분명합니다.
20년간 이어진 토마소 시대의 종언
1993년 1월 22일, 마세라티 경영의 전권을 쥐고 있던 알레산드로 데 토마소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면서 데 토마소 가문은 마세라티에서 손을 떼게 되었습니다. 1989년 크라이슬러에서 넘겨받은 49%의 지분을 피아트에 넘기면서 이미 피아트 그룹의 일원이 되어 있었지만, 알레산드로 데 토마소가 병으로 쓰러지자 피아트 오토가 나머지 51%의 지분까지 인수했습니다. 이로써 마세라티는 완전히 피아트 오토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20여 년간 이어진 데 토마소의 경영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엇갈립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자동차 산업 자체가 크게 변모했다는 사실 또한 분명합니다. 알레산드로 데 토마소는 경제적 배경이 부족했기 때문에, 말하자면 '자전거래'를 통해 마세라티를 키워냈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업계 자체가 소규모 자본으로 경영을 유지하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어 있었습니다. 과감하게 세계의 대자본과 맞서 싸웠던 이탈리아 최후의 자동차 제조사가 바로 알레산드로 데 토마소가 이끈 마세라티였습니다.
피아트 그룹에서의 개혁
마세라티를 개혁하기 위해 피아트에서 CEO로 투입된 인물이 바로 이우제니오 알차티였습니다. 그는 피아트 그룹 내에서 알파로메오나 페라리 등 특수한 소량 생산 스포츠카 제조사의 경영을 담당했던 경험을 살려, 적극적으로 마세라티 개혁에 착수했습니다. 알차티는 데 토마소 시대에 개발이 진행되던 '기블리(Ghibli) II'와 '콰트로포르테(Quattroporte) IV'를 향후 주력 라인업으로 삼기 위해 두 모델의 상품화에 힘썼고, 세계 시장에서도 통하는 품질을 추구했습니다.
일본에서도 큰 인기를 얻은 기블리 II
기블리 II는 '222.4V'의 발전형으로 개발이 진행되었으며, 주지아로가 디자인한 1세대 모델의 이름을 부활시켰습니다. 스타일링은 마르첼로 간디니가 담당했는데, 직선적인 디자인 속에 글래머러스한 곡선이 살아 있습니다. 특히 리어 펜더 주변의 강렬한 조형미는 간디니 특유의 감각이 돋보입니다. 전기 시스템의 대대적인 업그레이드와 ABS 도입 등이 이루어졌고, 유럽에서는 원메이크 레이스 '기블리 오픈 컵'이 개최되었으며, 레이스용 부품을 도입한 한정판 모델 '기블리 컵'은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이 시기에는 큰 시장인 북미로의 수출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호황과 맞물려 일본이 마세라티 판매량 세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알차티 CEO는 일본 시장의 가능성에도 주목하여 직접 일본을 방문해 테스트 주행을 실시했으며, 수입사와 협력하여 아시아 기후에 대한 대응도 신속하게 진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