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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토마소 시대의 부흥과 몰락

1970년대의 마세라티

2024년, 마세라티는 창립 11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이 긴 역사 속에서 1970년대 후반, 알레산드로 데 토마소가 브랜드를 인수하며 마세라티는 커다란 변혁기를 맞이했습니다. 이 시기를 제품 품질 문제로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경영난에 시달리던 마세라티를 부활시킨 전환점이었으며, 일본 시장에 브랜드를 정착시킨 것도 이 시기의 성과였습니다.

알레산드로 데 토마소의 등장

1975년, 마세라티는 파산 직전의 위기에 몰려 있었습니다. 1972년 오일 쇼크로 고성능차 시장이 붕괴되었고, 모회사 시트로엥마저 경영에서 손을 떼면서 상황은 악화되었습니다. 자산 동결 상태에 놓인 마세라티는 공적 자금으로 고용을 유지하며 재건의 길을 모색했습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모데나의 제조사 ‘데 토마소’를 이끌던 알레산드로 데 토마소였습니다. 그가 경영을 맡으면서 마세라티는 파산을 피했고, 직원들의 일자리도 지켜졌습니다. 그는 기존 데 토마소 모델에 마세라티 V8 엔진과 새로운 외관을 결합해 ‘카이알라미’와 ‘콰트로포르테 III’를 빠르게 시장에 선보였습니다.

그러나 대배기량 소량 생산 모델의 수요는 점차 줄어들었습니다. 당시 같은 모데나를 본거지로 하는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양산 다운사이징 전략, 비터보의 탄생

이에 마세라티는 생존 전략으로 선택한 것은, 그간 마세라티가 만들어온 대배기량 그란투리스모와는 완전히 다른 양산 다운사이징 모델, '비터보'의 개발이었습니다. 이 '비터보'는 큰 성공을 거두며, 오일 쇼크로 침체되었던 모데나의 하이퍼포먼스카 업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고, 마세라티를 모데나 최고의 생산 대수를 자랑하는 브랜드로 부활시켰습니다.

 

비터보의 대약진

1981년 발표된 비터보(이탈리아어로 트윈터보)는 V6 트윈 터보 엔진을 얹은 콤팩트한 5인승 쿠페로, 합리적인 가격과 강력한 성능을 앞세워 출시와 동시에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외관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강렬한 고출력 엔진을 탑재한 독특한 쿠페는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 정책 덕분에 출시와 동시에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참고로 이탈리아 국내 사양은 대배기량 모델에 부과되는 높은 부가가치세를 피하기 위해 2L로 설정되었습니다. 또한, BMW 3시리즈와 같은 유럽산 콤팩트 쿠페가 유행하던 북미 시장 공략을 중요한 판매 목표로 삼았습니다.

2도어 쿠페인 비터보를 기반으로 실용적인 4도어 모델 '425'가 곧바로 추가되었고, 미쏘니 직물을 사용한 인테리어도 화제가 되었습니다. 또한, 자가토에 일부 생산을 위탁한 '스파이더 자가토' 등 거침없는 기세로 라인업을 확장했습니다.

해외 시장용으로는 초창기부터 2.5리터 모델이 설정되었고, 이어서 2.8리터 엔진도 도입되었습니다. 북미의 니즈에 맞춰 와이드 바디의 2도어 쿠페 '228'이 추가되었고, 2도어 쿠페는 '222', 4도어 모델은 '430'으로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초기 비터보는 특수 챔버에 장착된 카뷰레터 사양이었는데, 이는 유지보수가 쉽지 않아 시장의 불만을 샀습니다. 이 때문에 2.5리터 후기형 및 2.8리터 모델에는 웨버-마렐리 인젝션이 도입되어 신뢰성을 높였습니다. 그전까지 연간 수백 대 수준이었던 마세라티의 생산 규모는 1980년대 중반에 무려 7,000대를 넘어서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양산 노선에서의 전환

하지만 마세라티의 적극적인 확장은 다소 성급했을 수도 있습니다. 1980년대 당시, 유럽과 북미의 부품 공급업체들은 심각한 품질 문제를 겪고 있었고, 이는 차량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주요 원인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일본차가 높은 품질을 무기로 세계 시장에 급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러한 품질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마세라티 또한 예외는 아니었고, 부실한 애프터서비스와 북미 시장에서 연이어 발생한 리콜 등의 악재가 겹치며 비터보의 판매는 급격히 감소했습니다. 사실 비터보는 섬세한 고성능차임에도 불구하고 평범해 보이는 외관 때문에 기본적인 패밀리카처럼 취급된 것도 판매 부진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1980년대 후반에는 북미 수출이 중단되면서, 마세라티는 기존의 양산 노선에서 틈새시장을 노리는 고성능차 노선으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스파이더 자가토에 하드톱을 얹은 스타일의 '칼리프(Karif)', 그리고 1991년에는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한 칼리프의 와이드 버전인 '샤말(Shamal)'이 새로운 V8 엔진을 탑재하고 데뷔하는 등, 이 콤팩트하고 잠재력이 뛰어난 '비터보 계열' 플랫폼에서 수많은 파생 모델들이 탄생했습니다.

데 토마소 시대의 공적

데 토마소 시대는 때로 부정적으로 평가받기도 하지만, 알레산드로 데 토마소의 대대적인 개혁이 없었다면 마세라티의 역사는 끊겼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또한, 현재의 마세라티로 이어지는 양산형 모델의 기원이 바로 이 시기에 있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다음에는 이 '데 토마소 시대'가 어떻게 막을 내렸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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